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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

 자동으로 임시 저장되었다가 지금은 이 네트워크 어딘가를 떠돌고 있을 내 수많은 기록의 편린들을 생각한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억지로 베개 위에 머리를 쑤셔박고 있다가 기어이 일어나 적어내려갔던 답답한 마음들, 그러나 쓰고 보면 별 것 아닌, 그저 투정거리에 지나지 않는 말들. 지금 이 괴로움이 고작 이것밖에 안되나 하는 생각에 미련없이 브라우저를 닫고 또 닫기를 여러 해. 그 글조각들을 그러모으면 제법 그럴 듯한 환자기록이 될지도 모른다.

 잠자리를 박차고 나오기 전에 무심코 머리맡에 손을 뻗어 핸드폰을 열었는데, 오늘은 이천팔년 삼월 이십구일이다. 내 기억 속에도 날짜변경선같은 게 있다면 시차가 하루가 아니라 한 오년 정도 될 것 같다. 정확히 오년 전 이 밤에도 나는 이런저런 괴로운 일들만 잔뜩 떠올려내고는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소리없이 앓고 있었을 거다. (확실하지는 않다, 술을 진탕 들이붓고는 추한 몰골로 뻗어있었을지도 모를 시절이니) 나의 짤따란 연대기에서 밤잠이라는 녀석이 처음으로 실종되었던 시기다. 그 무렵에도 뭔가 하나 끄적인 게 있었는데, 불면증에 걸린 한 남자가(맹세코 나는 아니었다!) 한밤중에 잠옷을 사러 나가는 콩트 비슷한 거였다. 여기서 잠옷은 '숙면의 필요충분조건' 비슷한 의미로 설정했던 건데, 실제로는 당연히 전혀 그게 아니었다. 사실 지금도 그 조건이 뭔지는 모른다, 있다면 없는 돈에 빚 내고서라도 사고 싶은 심정이다...

 '타인의 힐난'이라거나 온갖 좋지 않은 것들 이십오년치가 농축된 이미지를 생각한다. 매일밤 유쾌하지 못한 '역사'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끙끙거리는 불과 그 몇 시간 동안에 수도 없이 반복되어 머릿속에서 웽웽거린다. 마술사가 소매에서 여러 색깔로 이어진 천을 끝없이 뽑아내는 것처럼 여지껏 오해를 샀던 사건이나 그 정황들이 줄기차게 쏟아지고, 난 그저 같은 좌표에서 뒤척일 뿐이다. 정말 지독하게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런 기억에 휘발성이 없다는 성질 자체는 고되다느니 잔인하다느니 하는 것들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데, 이상하게 자꾸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어진다. 그게 싫다. 

 진자처럼 면전까지 들이닥쳤다가 달아나는 어떤 '주기'를 생각한다. 달이 차고 다시 기울기 전에, 어쩌면 한 번 더, 아니면 두 번? 언젠가는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온다는 걸 알고 있다. 어쨌거나, 지금은 별로 좋지 않다. 확실히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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