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출력

배명훈 - 맛집 폭격

맛집 폭격
국내도서
저자 : 배명훈
출판 : 북하우스 2014.12.05
상세보기

모스크바의 미국 대사관에서 공작하던 CIA는 이른바 '모스크바 수칙'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그중에는 이런 말이 있다. '한 번은 우연, 두 번은 우연의 일치, 세 번은 공작이다.' 

김영하,「빛의 제국

* 남자는 자신이 즐겨찾던 식당의 메뉴를 설명한다. 그 설명 뒤에는 항상 같은 의구심이 뒤따라온다: 왜 하필 자신이 갔던 이 가게가 폭격을 당했을까? 전시 상황에서의 무차별 폭격이 일상이 되어버린 서울을 배경으로, 직무상 사고 현장을 조사해야하는 주인공은 자신이 맛집이라 여기던 곳들이 폭격에 희생되는 일을 연달아 경험하게 된다. 대민 피해 스케일의, 그것도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벌어지는 재난 속에서 발견되는 패턴이 하필 개인사와 맞물린다면,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국가 간의 무력 시위와 개인 간의 메시지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들을 엮어냄으로써 조성한 이 우연에의 의구심은, 그 기발함 탓인지 전개에 있어서 상당히 근사한 중심축으로서 기능한다. 지극히 미식 기행스럽게(?) 풀어내는 각 맛집에 얽힌 에피소드들도 작품에의 몰입에 한몫.

* 작 중 열거되는 폭격당한 맛집의 주소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장소들이다. 이것을 눈치채기 시작한 부분이 중구 한강대로 416이 등장했을 무렵인데, 피폭 지점 바로 옆에 남대문경찰서가 있다는 대목에서 작년에 출근했던 근무지가 곧바로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이후의 묘사들에 대한 이미지도 선명하게 잡혀서 나름 재미있었던 기억이. 그 뒤에 나왔던 마포구 서교동 490도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의 쇼핑몰이어서 장면들을 짚어내기가 수월했던 듯.

* 본작의 위트도 위트지만, 사실 한동안 놓고 있었던 도서 관련 포스트를 작성하기로 결심하게 된 것은 마지막에 실린 작가의 말 때문. 특이하게도 작가의 말을 1, 2로 나누어놓았는데, 각각 2014년 4월과 11월에 따로 작성된 것들이다. 첫번째 것을 쓰고 나서 며칠 뒤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고, 두번째 것에서는 이 때문에 작품의 소재와 민감한 시류가 자칫 한 데 얽혀 행여 당초의 의도와는 다르게 읽힐까 염려하여 사실 관계를 밝혔다. 불필요한 오해를 덜어내고자 굳이 작가의 말을 하나 덧붙인 점도 좋았지만, 여기에 쓰인 어조와 표현들이 마음에 들어서. 말마따나 우리는, 정말로 그렇게 밝혀두지 않으면 모든 것이 순식간에 다른 맥락 아래 놓이게 되기도 하는 나라에 살고 있으니까. 이야기는 이야기로서, 그저 이야기로서 받아들여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