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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69.

* 지금 내 옆에는 친구가 두고 간 안경이 놓여있다. 지난 몇년간 시력 교정 수술 여부를 고민해가며 안과를 수차례 다녀오더니, 수술 후 통원 치료까지 마치고 내 방을 나서는 길에 여지껏 자신의 눈이나 다름없었던 안경을 그야말로 '깜빡하고' 두고 갔다. 뒤늦게 전화가 걸려오더니 보관하고 있으라고. 잘 보이니 그리 좋던가 싶어서 덩달아 흐뭇한 기분. 정작 나에게는 아직 확신이 없다...

* 상반기의 어느 날 점심식사를 하러 나가는 길에, 내 앞을 지나 대각선 맞은편 건물로 앰뷸런스 하나가 향하는 걸 봤다. 주변 사람들이 설마하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수군거리는 와중에, 거짓말같이 방호복을 입은 사람 서넛이 내려서는 들것을 들고 건물 안으로 향했다. 발에 덧대어 칭칭 동여맨 방역화. 내딛는 걸음걸음이 묘하게 전투적으로 보였던 건 기분 탓이었을까. 어수선한 가운데 흔해져버린 목격담들이 마치 전염되기라도 하듯 부근으로 퍼졌다.

 그것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질병이 아니었다. 창궐이라는 표현은 오히려 메르스보다는 그에 대한 우려와 공포감에 더 어울려보였다. 쉽게 전염되지 않는다던 보건당국의 발표가 무색하게 메르스는 마른 들판에 놓인 불처럼 삽시간에 번졌다. 이 불길 앞에서 우리가 목격한 것은 무엇이었던가: 역학적 연관 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불씨를 몰라봤던 안이한 대처, 낙타고기를 섭취하지 말라던 비상식적인 지침, 세간의 혼란을 폭발적으로 가중시킨 후에야 뒤늦게 공개된 정보들. 이쯤되면 특별위원회 질의답변 시 병원의 미흡한 초동 조치 건으로 질책받았을 때 해당 병원의 감염내과 과장이 '이것은 국가가 뚫린 것'이라고 답했던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사태가 조금 더 악화되었더라면, 「28」의 화양이나 「페스트」의 오랑과 같은 일이 현실에 나타나지 않았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지난달 격리병동에서 마지막 메르스 환자가 숨을 거두었다. 이로써 대한민국 내의 메르스 감염 인원은 공식적으로 0명. 그러나 방역 체계의 실패가 안겨준 불신은 해당 질병의 종식과는 관계없이 사람들의 뇌리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결국은 온 나라가 앓았던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으니. 개인적으로도 이 과정에서 맞닥뜨렸던 크고 작은 현상들이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안겨줬던 바, 바탕화면에 여러 달이 넘도록 메모로 남아있던 토막을 해를 넘기기 전에 기록해본다.

* 오늘 김주성 선수가 KBL 최초로 통산 1000 블락을 달성했다길래 NBA 기록은 어떤가 해서 검색해봤더니 1위 하킴 올라주원 3830개, 2위 디켐베 무톰보 3289개(공교롭게도 둘 다 아프리카 출신). 전혀 놀랍지 않게도 팀 던컨이 2982개로 5위인데 은퇴할 때쯤이면 4위까지는 올라갈 듯.

* 매년 새해가 올 때마다 SNS 상에 떠돌아다니는 'new year, new me' shit에 삐딱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내년에는 좀 나은 모습이고 싶다. 올해는 업무상으로도 스스로 평가하기에는 거의 기능적 파산 수준이었던 데다가, 사적으로도 이것저것 원하는대로 굴러간 게 없어서. 자존감같은 것도 길 가다가 자판기에서 뽑아내듯이 쉽게쉽게 좀 채울 수 있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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