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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72.

* 근래에 정황상 블로그에 쓸 뻔했던 글이 하나 있고 그와는 상관없이 쓸까 말까 고민했던 글이 하나 있는데, 결과적으로는 둘 다 쓰지 않았다. 그 점에 대해서 나름 안도하는 중이다.

* [화지] 상아탑 가사 중 '내 형용사는 쩌는, 좆 되는, 기가 막힌' 부분을 들을 때마다 내 형용사가 있다면 무엇일지 생각하곤 한다. 아직 하나도 못찾았다, 모르겠다.

* Axt 4호에 실렸던, 실로 재앙에 가까웠던 듀나 인터뷰에 대한 피드백을 보려고 Axt 5호를 뒤늦게 사들였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5호에 실린 Axt 측의 입장 피력은 적어도 장강명 작가가 쓴 '악스트를 위한 변명'에 준하는 수준의 성의는 보였어야 했다. 백다흠 편집장은 outro에서 5호의 인터뷰이였던 파스칼 키냐르 作 「세상의 모든 아침」에서의 사제지간의 문답을 인용하며 4호 듀나 인터뷰의 근간에 자리하고 있는 어떤 몰이해를 인정한다. 문제는 자신이 인용한 대목으로부터 도출해낸 '질문의 한 속성'에 지나지 않는 단면 뒤에 숨어 자세한 언급을 회피하려는 데 있다. 인터뷰 질문이 아둔했다는 것을 '질문 자체에 내재된 강박과 무의미의 속성'에 빗대어놓고는 변명과 해명이 떠올랐지만 그것이 다른 목적을 위한 '질문'(원본에서는 '왜')들을 낳을까봐 염려하여 밝히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인터뷰의 질문 내용이 지나쳤던 점은 인정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해당 논란과 관련하여 곤란한 질문을 받기를 거부하겠다는 것으로밖에 읽히지 않는다. 이 사건에서 Axt는 명백하게 그 '다른 목적을 위한 질문'을 감당해야할 책임이 있는 주체이며, 그 주체가 설령 문예지라 할지라도 응당 설명되어져야할 것을 설명하지 않고 문학적인 비유 하나로 일축하려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리뷰 대상으로 Axt 4호를 지정하고 해당 리뷰를 김보영 작가에게 맡긴 것까지는 좋았다. 그래봤자 남의 입에서 나온 쓴소리, 그렇다면 어째서 자신들의 입으로는 그 질타들에 대한 이렇다할 응답 하나 없이 '어리석었다, 미안하다'로만 일관하며 쉽고 간결하게 끝을 맺으려 하는가.

* 코비가 마지막 경기에서 60득점이라는 말도 안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면서 코트를 떠났다. 아직까지 현역으로 남아있는 몇 안되는 90년대 드래프티들이 향후 몇 년 사이에 모두 은퇴하고 나면, 그들을 추억하면서 가뜩이나 지금도 아저씨지만 뭔가 진정한(?) 아저씨가 되어버릴 것만 같은 기분. 17-18 시즌부터 NBA 유니폼에도 광고 부착이 허용된다는데 괜히 모양새 난잡해지기 전에 좋아했던 선수들 져지나 좀 사둘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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