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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77.

* 2008년 광우병 파동 때 집회의 본질은 보존되어야한다는 골자의 글을 작성한 적이 있다. 대다수는 애초에 집회의 발단이 된 사안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몇몇은 현 정권에 대한 다른 불만들까지 한 데 싸잡아서 분출시키고 있다고. 각자의 성향이나 의견들도 백번 존중받아야 마땅하나, 시류에 편승하여 다른 목적을 달성하려는 움직임은 결국 순수하지 못한 선동으로 비춰질 수 밖에 없다고. 8년 뒤에 나가본 광화문은 어쩌면 그리도 달라진 것 하나없이 제각각인지. 아무리 형평성에 어긋난 정책을 비판하는 것이 정의롭고 옳은 일이라 해도, 국정농단 사태를 규탄하고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자리에서 언급된다면 논지를 벗어난 이야기일 수 밖에. 하물며 그것이 자신들의 권익과 관련된 것이라면 더욱 더. 게다가 '살인 경찰' 등의 맥락없는 원색적인 비난부터 미신고 집회 장소로의 행진을 부추기는 일부의 대책없는 움직임까지. 지금 우리는 이념을 초월한 대의명분을 가지고 드물게 국민 전체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기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집회 본연의 주제에 집중할 수 있도록 부디 조금만 자중해주시라.

+) 집회 첫날에 나가봤던 이후로 매 주말 참석 인원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 계속해서 별다른 사고 없이 무탈하게 하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평화로운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

* CGV에서 서울힙합영화제라는 기획으로 관련 작품들 상영할 때 Bad Rap을 봤는데 이거 번역 누가 맡았냐...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몇몇 군데에서인가 힙합에 대한 배경지식이 결여된 듯한 어정뜬 해석이 보여서 조금 아쉬웠다.

* 풀코스 대회 첫 출전 후기(2016 중앙 서울 마라톤)

- 지금까지 참여했던 대회들 중 가장 큰 규모. 출전 인원이 많다보니 실제로 어느 구간에서도 한산해지는 법이 없었을 정도.

- 목표가 막연하게 Sub4였기 때문에 대회를 앞두고 4시간짜리 playlist를 작성해볼까 하다가, 그냥 심플하게 앨범 4개 연속 재생. 순서대로 Wu-Tang Clan - Enter The Wu-Tang(36 Chambers) / Nas - Illmatic / Jay Z - The Blueprint / Kendrick Lamar - Good Kid, M.A.A.D City. 선정 이유는 모두 클래식들이라 워낙 익숙하게 자주 들어와서 시간을 가늠하기가 수월했기 때문에. 38km 지점에서 핸드폰이 전사했을 때가 [Kendrick Lamar] - M.A.A.D City (Feat. MC Eiht) 나올 무렵이었다.

- 뭘 믿고 그랬는지 줄곧 하프 페이스로 내달리다가 반환점 돌고 28km쯤에서 급격히 피로가 가중되면서 페이스 저하. 이 때부터는 몸이 힘든 것과는 상관없이 달리던 관성이 그냥 억지로 끌고 가는 느낌. 특히 28~33km 구간은 너무 졸려서 거의 반쯤 눈을 감고 달렸다. (뒤에서 달리던 사람들은 저 인간이 왜 저렇게 휘청거리면서 뛰나 걱정했을 듯) 그 와중에 29km에서 개인적으로 챙겨온 파워젤 하나, 31km에서 주최측이 준비한 파워젤 하나를 섭취했는데 이게 33km 정도에서 카페인 흡수가 다 됐는지 갑자기 눈이 번쩍 떠지면서 제정신이 들더라. (일명 악마와의 계약) 어쨌거나 의식은 또렷해졌어도 힘든 건 매한가지.

- 39km 지점에서부터 다리가 맛이 가기 시작했다. 쥐가 나려는 것을 어찌어찌 견뎌가며 거의 걷는 속도에 가까울 정도로 느리게 뛰었다. 돌이켜보면 이 때 멀쩡했더라면 10분 정도는 단축할 수 있었을텐데. 잠실학생체육관 지날 쯤부터는 혼잣말로 스스로에게 제발 버텨달라고 계속 되뇌이고 있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결승 지점 바로 앞의 트랙을 걸어들어가기는 죽어도 싫었거든. 3:50 페메가 나를 앞지르는 걸 본 적이 없었음에도 결승 지점의 시계가 3:53:xx로 나타나있는 걸 보고 의아해하며 레이스 종료. 나중에 집에 가서 핸드폰 충전 후 기록 문자를 확인해보니 3:50 이전에 들어온 게 맞았다.

- 완주 메달과 간식 수령하고 경기장 빠져나오는 길에 갑자기 쥐가 나서 지나가시던 분들이 풀어주려고 도와주시는 통에 그 좁은 통로에 누워서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연신 죄송하다는 말만 하면서 한편으로는 민망해서 누운 채로 계속 웃었다. 그렇게 온몸이 만신창이인 상태에서 집으로 가는 길은 왜 이리 멀기만 한지. 닭죽 생각이 간절했는데 정작 돌아오니 죽집까지 걸어갈 엄두가 나지 않아 곧바로 방에 들어와 요양 모드.

- 이제 겨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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