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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저스: 엔드게임.

<2019-05-06 16:28 원본 작성>

※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 소설이나 만화가 영화로 제작되는 것은 이제 와서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원작의 설정이나 세계관에 따라서는 유달리 실사화가 어렵다고 여겨지는 작품들이 있었다. 히어로물 중 일부는 줄거리의 개연성과는 별개로 관객들의 몰입을 저해하지 않는 수준의 정교함을 필요로 했다. 자연히 그들의 시나리오는 모든 것들이 구현 가능할만한 막연한 미래를 기약해야만 했다. 시간이 흐르고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영화의 장면들은 최소한의 납득을 넘어서 어느새 경탄을 자아내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한 시대에 부응하여 아이언맨은 그 철갑에 단 한점의 조악함도 묻히지 않고 스크린에 온전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마블 중흥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건 리부트 이전의 스파이더맨 트릴로지였으나, 현 MCU의 실질적인 서막을 연 것이 누구인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그로부터 10여년, 각 캐릭터들이 어벤저스라는 이름 아래 규합하는 동안, 우리는 이 시리즈가 상업 컨텐츠로서 성공적으로 자기 영역을 구축하는 것을 지켜보아왔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대중들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던 이미지를 열화없이 구현함과 동시에, 캐릭터 간의 상성을 적극 반영하여 개별 작품들의 적층이 아닌 하나의 유기적인 세계를 영화에 완벽하게 옮겨놓은 것이다. 물론 원작의 방대한 물량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걸 감안하고서라도 영상에 있어서나, 플롯의 연계에 있어서나 이다지도 흠잡을 데 없는 이식 사례가 있었던가. 지금 세대의 엔터테인먼트가 보여줄 수 있는 어떤 파급력의 한 단면. 본작은 그 모든 영광을 함께했던 히어로들에 걸맞는 마무리로 이야기를 맺으며 Infinity Saga에 종언을 고한다. 훗날 이 시기를 회상할 때 떠오를 추억 중 하나가 될 것만 같은, 의심의 여지없는 마블의 최전성기.

* 영화 상에서 시간 여행 개념을 끌어들여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에서, 초반에 앤트맨이 과거로 돌아가는 아이디어를 냈을 때만 해도 이 대단원의 끝을 기어이 이토록 억지스럽게 맺으려 하나 싶은 마음에 실망감을 억누르기 힘들었다. 그러나 줄거리는 단순히 타임라인을 넘나드는 데 그치지 않고 (아마도 거의 모든 전작들을 보았을) 관객들로 하여금 지난 10년간의 MCU에 대한 회상을 이끌어냄과 동시에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유대'의 이미지들을 교묘하게 엮어낸다. 지나온 장면들을 재활용하여 무수히 쏟아져나오는 오마주들을 보면서 반가운 마음마저 들었을 정도.

* 캡틴 마블의 활용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벤저스와의 이렇다할 교감이나 융화없이 주요 전개에서 배제된 채 철저하게 해결사 역할로만 등장하는 것은 지나치게 노골적인 데우스 엑스 마키나 아닌가. (원작에서 어떤 식으로 다루어지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렇게 되고 보니 그녀의 셀프 타이틀 작품은 결과적으로 먼치킨에 가까운 능력에 당위성을 부여했을뿐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기는 어렵게 되었다. 마지막 전투씬만 놓고 보면 어벤저스 애들이 죽을둥 살둥 목숨 걸고 싸우느니 차라리 원거리 공격으로 엄호만 하고 캡틴 마블이 알아서 설치도록 놔두는 게 훨씬 효율적이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