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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64. * 기록이 멈췄던 건 매해 말일마다 적고는 하던 그 해의 결산을 앞두고 회의감이 들었던 몇 해 전. 마냥 남기기 유쾌한 일만 있는 건 아니니까. 그런 것들 몇몇이 버티고 서서는, 한 해를 정리하던 그 포스트를 여러 해가 지나도록 고민하게 했다. 그러다 보니 말하고자 하는 것이 밀리고 밀려서, 쌓이고 쌓이다가 엎어지고는 그 위로 또 쌓여서 정리할 엄두가 나지 않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다른 일들은 어떻게 또 꾸역꾸역 잘만 지나가던 걸, 왜 이것만큼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을까. 시간이 필요했다. 어차피 본질은 개인의 아카이브인 고로, 얼마만큼의 공백이 있건 간에 이 공간이 아예 없어져버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형식으로건, 어떤 의도에서건간에, 결심만 서게 된다면 언제고 다시 시작될 이야기들이니까..
액트 오브 킬링. * 한 무리의 사내들이 영화에 출연할 배우들을 섭외하기 위해 인가들이 밀집해있는 거리를 돌고 있다. 영화는 과거 인도네시아에서의 공산당 숙청을 위시한 학살 사건을 다루며, 캐스팅에 나선 이들은 실제로 이 살상을 자행했던 장본인들이다. 연기해야할 배역을 설명하는 남자, 집이 불에 타서 오열하는 아이 역할을 연기하면서도 유쾌하고 호탕한 태도를 잃지 않는다. 한 건물 옥상에서 자신들이 어떤 방법으로 사람들을 죽여왔는지 묘사하는 남자도 그저 자랑스러운 추억인양 얼굴에서 미소를 거두지 않는다. 기백만명의 목숨을 앗아갔음에도 스크린에 비춰지는 현재의 시대상은 마치 이들의 편을 들어주기라도 하는 듯이 계승자들이 득세하여 영웅으로 추앙받는 분위기. 인터뷰와 영화 촬영이 교차하며 실제 사건과 그 재현이 동일한 참상을 이..
나를 찾아줘. * 결혼 전후의 배우자의 모습은 각기 다르다고 했던가. 상사나 동기들이 술김 반 진심 반으로 내놓는 충고들이 그러했다. 착하기만 했던 그녀가 결혼하고 나니 본색을 드러내더라는, 변검이 난무하는 경극같은 얘기들이 유부남들과의 대화에서 하나의 유형으로 자리잡았다. 소상히 들여다보지 않았던 것에 그제서야 눈길이 갔던 탓일까, 아니면 그녀들이 정말 결혼을 기점으로 변해가기 때문일까. 에이미(로자먼드 파이크 분)가 살해되기는 커녕 이 모든 상황을 설계해왔다는 것이 드러나는 운전 씬의 대사들은, 전반부의 사태가 극단적임에도 실상은 앞서 언급한 문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음을 시사한다. 결혼 생활에 대한 인식의 결이 저리도 소름끼치도록 달랐다는 것을 주인공들은 평소에 알기나 했을까. * 그러나 이러한 생각을 가다듬을 ..
신의 한 수. * 이 영화를 보면서 타짜를 떠올리지 않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 종목만 다른 도박판, 거기에 복수극, 심지어는 각 구획별로 붙여놓은 부제를 화면에 띄우는 모양새까지. 그러나 이 둘의 차이는 의외로 명료해보였으니. 높은 숫자의 조합을 만들면 되는 비교적 간단한 섰다와는 달리, 바둑은 다루어져야할 배경 지식이 터무니없이 방대하다. 조작할 수 있는 여지조차 없다보니 자연스레 고수들이 원격으로 수를 알려주는 수법 일변도로 진행이 되는데, 문제는 바둑 고유의 진입 장벽 탓에 관객이 캐릭터들의 실력을 판단할 수 있는 장치가 극히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그 중 하나인 사활 문제마저도 극의 전개 속도에 끌려가며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지는 탓에, 관객은 인물들의 반응과 계가 결과를 제외하고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크로니클. * 영웅물의 관점에서는 우연한 기회에 초능력을 얻게된 이들 중 극악의 케이스를 다룬 이야기가 되겠지만, 카메라가 담아내는 인과 관계의 시퀀스는 성장물에 더 가까워보인다. 영화는 시종일관 소년의 불우한 환경과 억압된 분노를 따라가다가, 초능력자가 된 이후 그것이 증오로 표출되어 끝내 스스로의 파멸을 자초하는 과정을 그려낸다. 초능력을 가진 자가 모두 영웅은 아니다: 실제로 소외되고 따돌림당하던 소년의 사정은 초능력을 얻고 난 뒤에도 별반 달라질 기미가 없어보이고, 영웅이 되기는 커녕 오히려 악화일로로 치닫지 않았던가. 영웅물에 툭하면 등장하는 그 많은 미친 악당들이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아서? 하지만 정작 본작에서 문제의 범위는 그러한 스케일까지 확장되지도 못하고 개인사 차원에서 끝끝내 머무른다. 결국은 주..
보이스 코리아 파이널 라운드 {20120511} @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 * 뮤지크 내한공연 있던 날이었음. 괜히 예매 안해놓고 보통날처럼 터덜터덜 퇴근해서 방에 처박혀있으려는데 친구가 티켓 있다고 연락와서 거의 8년만에 경희대로 날아감. 평소에 보던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대충 누가 나오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던 터라, 게다가 공연 관람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던 고로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결승인 건 평화의 전당 입구까지 가서 포스터 보고서야 알았다. (동행인에게 오늘 이거 결승이었냐며) * 결론은 손승연 우승. 탑밴드 나왔을 때부터 비범하다고는 생각했지만 딱히 컨템퍼러리 성향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거늘(심지어 작년에 라이브를 본 적도 있다), 이 프로그램을 거치면서 - 정확하게는 신승훈의 손을 거치면서 - 방향성을 제대로 잡았다는 느낌. '오직 목소리로 승부하라'는 프..
부러진 화살. * 재학 당시 학교 게시판에서 한 번 화제가 되었던 걸로 기억하는 사건이다. 그런데 그 당시에 본인이 접했던 정보는, 이러한 억울한 사연이 얽힌 사건의 전말이 아니라 단지 수학과 모 교수가 석궁으로 누굴 쏴서 구속됐다더라 정도의 단편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음. 이 영화 개봉 전에 대강의 정보를 알게 되고 나서야 비로소 이 일이 그런 양상이었다는 걸 인지. * 중심이 되는 사건 내용과는 별개로 각색에 있어서 약간 불편한 부분이 있었는데, 얼마 되지도 않는 그 짧은 장면이 영화 전체에 대한 인상을 바꿔놓았음을 - 그것이 그다지 좋지 못한 방향이었음은 유감이다 - 고백해야겠다. 주인공이 독방으로부터 일반 사동으로의 이동을 통보받을 때의 그 반응은 어쩌면 '잘못된' 것이 아니었을까. 실제 인물의 성향이야 어찌됐건..
모파상 - 벨아미 벨아미 국내도서 저자 : 기 드 모파상(Guy de Mauppasant) / 송덕호역 출판 : 민음사 2009.09.25상세보기 본격 여자들 등처먹으며 출세하는, 외모는 출중한데 멘탈이 폐기물 급인 한 남자의 이야기. 막연히 지금보다 더 정숙한 분위기일 거라 여겨왔던 근대를 배경으로 치정과 불륜이 횡행하는 건 현대에 이르러서나 이루어진 각색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딱히 그런 것만도 아닌가보다. 하기사 시대를 막론하고 어딜 가나 여성들에게 인기있는 놈팽이 남성상은 존재하기 마련이고, 도덕과 규율의 경계를 넘어서면서까지 자신의 야욕을 충족시키는 인간형 또한 존재하기 마련이니. 벨아미(Bel-Ami)는 '미남 친구'라는 뜻의 불어로, 주인공의 첫번째 내연녀의 딸이 지칭한 이후 그의 별명이 되었다. 자신이 고백..